진리의 현장

1. 진리는 만인의 희망
진리라고 하면 지금 사람들 사이에는 좀 멀어진 말 같다. 다들 생활에 쫓기기 때문이리라. 진리라고 하면 우선 어떤 철학의 이론이거나 어려운 물리학의 법칙같은 느낌이 앞선다. 그렇다고 진리라는 것이 우리와는 아주 동떨어진 타방세게(他方世界)의 일만은 아닌 듯, 그래도 우리는 주변에서 곧잘 '진리'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것이 진리다.' 또는 '그것이 진리일까? '참으로 진리라면 마땅히… 하여야 할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대개는 우리의 주변에서 혹은 우리의 성장과정에서 적어도 한 때는 '무엇이 진리인가?'하고 더듬고 헤맨 시절을 가졌을 것이다. 그리고 진리대로 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손에 잡히지는 않았고….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지식이야 있던 없던 그 나름대로 철학을 갖고 있다.
'인생은 분수대로 사는 것이다.' '그냥 닥치는대로 사는 것이다.' 또는 '적당히 해 가는 것이다.' 등등 제각기 기묘한 인생철학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는 그들 나름대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진리라면 '마땅히…라야 할 것이다.'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진리라면 마땅히 그대로 되어야 한다.' '진리라면 마땅히 성취, 성공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참으로 진리라면 평화와 안녕이 있어야 한다.' '진리라면 발전과 행복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는 등등 제각기 진리관을 가지고들 있는 것을 보게 된다.기이한 노릇이다. 진리를 찾아 헤매다가 주저앉는 사람에게서 묘하게도 일정한 진리관을 듣게되는 것이다.


2. 만인은 일찌기 진리의 체험자
대개 '술 생각이 난다.' '담배가 피우고 싶다.' '골프를 치고 싶다.' 하는 사람은 기왕에 이미 술을 마셔 본 사람이거나 담배를 피웠던 사람들이다. 골프를 쳐보지 못한 사람이 어찌 골프 생각을 할 것인가?진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진리를 구하는 사람은 일찍이 진리를 알았거나 아니면 진리를 가졌던 사람들이다. 진리를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진리는 마땅히 '이러 이러한 것이다.' '이것은 자명지리(自明之理)다.'라는 생각을 낼 수 있을 것인가.

3. 진리요구는 생명의 발현이다
젊은 시절, 생명의 푸른 싹이 가장 발랄하게 피어오르는 시절, 지성의 눈이 트이는 그 시절에는 누구나 한 번은 진리를 구하고자 목마르게 찾아 헤맨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생명의 진실이 바로 진리이며 생명의 근본이 진리이기 때문에 생명이 당연히 자기면목(自己 面目)의 확인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진리의 질서를 자기화하려고 요구하는 것이다. 자기 생명이 진리이기 때문에 비록 착각을 일으켜 자기 진실을 확인하지는 못하더라도 진리는 '이러 이러한 것'이라는 사실을 자명지리(自明之理)로 아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진리는 우리에게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는 것이고 진리는 우리에게 안락과 성취를 가져오는 것이며 진리는 성공과 발전이 있는 것이고 진리는 평등하고 공정한 것이고 진리는 영원과 무한을 가져오는 것이며 진리는 자유와 환희를 가져오는 것이라는 것 등을 우리는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만약 화평하지 못하거나 번영하지 못하고 안락하지 못하고 발전이 없고 불공평하고 속박을 느끼고 불안을 느낀다면 곧 이것은 '진리는 아니다.'라고 항의하고 나서는 것도 또한 당연하다 할 것이다.


4. 진리 판단은 본래 생명에서 오는 것
이와 같이 진리를 모르면서도 진리와 비진리(非眞理)를 어떻게 판단하는 것일까? 이는 거듭 말해서 어쩔 수 없이 사람사람 개개인이 바로 진리의 한 표현이며, 그의 내실생명(內實生命)이 진리와 통하고 그의 실지 본분(實地本分)이 진리라는 사실에 착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맹인이 밝음을 보지 못한다하여 밝음이 어디 다른 곳으로 간 것은 아니다. 태양이 지구에 가렸다하여 없는 것이 아니다. 별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고 별이 없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색맹인이 채색을 구별하지 못한다 하여 색채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가 알든말든 여전히 단청 빛깔은 화려하고 뭇별은 반짝이고 소근대며 태양은 찬란하고 광명은 온천지에 가득히 뿌려지는 것이다, 진리도 마찬가지다.
진리를 알고 말고에 상관없이 그는 영원무한(永遠無限)하고 원만구족(圓滿具足)하며 절대자재(絶對自在)하다. 지공무사(至公無私)하고 만덕을 스스로 갖추었다. 온갖 지혜와 자비와 위덕과 능력이 바다같이 넉넉하다.
그것은 미(迷)하고 깨치고에 상관없다. 많이 닦고 안 닦고에 상관없다. 죄를 지었거나 사한 것과 상관없다. 성인(聖人)이고 범부(凡夫)에 상관없다. 유식무식에 상관없다. 성인이고 유년이고 상관없는 것이다.

5. 진리는 미오(迷悟)에 상관없다.
흔히들 말한다.
'깨친 사람에게는 진리이거니와 깨치지 못한 사람 즉 미(迷)한 사람에게는 진리가 아니라 장애'라 한다.
참으로 그런 것일까?
도대체 迷라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착각이다. 잘못 보는 것이다. 새끼 토막을 뱀으로 보거나 금덩어리를 돌로 보거나 유리관을 철관으로 보거나 지구는 부동한데 해와 달이 떴다가 진다고 보는 등 인식에 착각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이와같이 착각을 일으켰을 때 착각은 착각하는 그 사람에 있어 오인될 뿐이지 결코 오인과 관계없는 제 삼자에게 있어서나 오인한 당사자에게서도 그 오인으로 인하여 해와 달이 뜨고 지거나 유리관이 철관이 되거나 금덩어리가 돌이 되거나 새끼토막이 뱀이 되지는 않는다. 여전히 금은 금, 유리관은 유리관이고 새끼 토막은 풀섶에 흩어져있고 지구는 쉬지 않고 돌고 돈다.
진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迷悟에 상관없이 진리는 진리 그대로 영원 불변하다. 깨쳤다 하여 더하지 않고 迷했다 하여 덜하지 않으며 성인에 있어 더하지 않고 凡夫에 있어 덜하지 않는 것이다.
독자여, 여기의 이 본불변(본래는 변하지 않는 것)의 비유는 본연진리(本然眞理)에 변함이 없다는 비유인 것을 기억해 두고 오해 없기를 바란다.

6. 모두는 이미 완성되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법화회상의 일이다. 법화회상은 바로 법화경을 설하셨다. 다 아는 바와 같이 법화경에는 남자, 여자, 이승(二乘: 보살도를 닦지 않는 수행인) 모두가 성불할 것을 선언하였다. 그때까지의 일반 생각으로는 이승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벽지불(酸支佛)이 극치이고 여인은 성불하지 못한다고 알려 왔는데 부처님께서는 이를 완전히 부정하신 것이다. 가섭존자, 아난존자, 사리불존자, 수보리존자, 목련존자를 위시하여 모든 부처님 제자가 성불할 것을 수기(授記: 예고)하였던 것이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지금 이미 모든 중생이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는 말씀이다.

방편품(方便品)에 말씀하시기를 '사리불아, 마땅히 알라. 내가 본래 서원(誓願)을 세우기를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나와 똑같게 하여 다르지 않게 하리라 하였는데 나는 이제 저 옛날에 세웠던 원(願)을 이미 만족스럽게 실현하였다.' 하셨다. 우리는 '이제 이미 만족하였다(今己滿足).' 하신 점에 특별히 주목하는 바이다. 이것은 이제부터 몇 겁(劫)을 드나들며 닦아서 그 다음에 성불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미' 여래(如來)라는 말씀이다.

7. 진리는 바로 현실이다.
놀라운 사실이다. 믿기 어려운 말씀이다. 그러기에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이 법은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렵고…. 만약 믿고 가진다면 참으로 희유(希有)라.' 하신다. 또 법화회상 벽두 이 법문 설하시기 전에 오천 인이나 되는 대중이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것이다. 그만큼 법문은 만나기 어렵고 믿기 어렵고 알기 어렵다.
헌데 이 믿기 어려운 - 일체 중생이 부처님과 똑같은 지혜와 자비와 위신력(威神力)과 성스러운 덕상과 한량없는 공덕이 원래로 갖추어 있다는 - 사실은 누가 이를 믿든 안 믿든 사실은 사실대로 그대로 있는 것이다. 이 도리를 믿든 안 믿든 깨쳤든 못 깨쳤든 사실은 사실대로 엄연히 우리 앞에 현전되어 있으며 이를 알고 모르고에 상관없이 쓰는 자에게는 진리대로 공덕이 이루어지고 소망(所望)은 성취된다. 그것은 수소 가스가 가연성(可燃性) 물질이라는 사실을 알든 말든 수소 가스에 불을 붙이면 빛과 열을 얻는 것과 같다.

8. 이곳이 진리의 현장이다.
모든 것이 완전한 것, 영원 자재(自在)한 것, 지혜와 위덕(威德)이 원만한 것, 창조 조화(調和) 생명(生命) 행복(幸福)이 가득한 것 - 이것이 진리의 속성(屬性)이다. - 이것들은 진리에서부터 흘러나온 것이다.
완전한 진리는 여래부처님이다. 그러므로 모든 참되고 영광스러운 공덕은 부처님에게서 온다. 일체 공덕치고 부처님 밖에서 오는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가 이 진리를 모르고에 상관없이 원래 이 진리대로 있다. 대진리(大眞理)대로 영원히 자재한 것이다. 아무도 이 진리 밖에 있는 자 없다.
불교인도 기독교인도 무종교인도 사교인(邪敎人)도…, 이 밖의 자라고는 없다. 무당도 판수도 실로는 모두가 이 진리대로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세계, 여래 공덕의 세계가 곧 진리의 현장이다.

9. 마음이 청정하면 불국토를 본다.
유마회상(維摩會上)에서 있던 일.
보적장자(寶積長者)가 부처님께 '모든 보살(구도자)은 어떤 행을 닦아서 성불하여 불국토를 성취하는가,'를 물으니 부처님은 직심(直心), 인욕(忍辱), 사무량심(四無量心), 사섭법(四攝法) 등 열여섯 법문을 말씀하시고 끝으로 '마음이 청정함에 따라 곧 일체 공덕이 청정하니 그러므로 만일 보살이 정토(淨土)를 얻고자 하면 마땅히 그 마음을 정(淨)하게 할지니라.' 하셨다. 그 때 회중에 있던 사리불 존자가 생각하기를 '만일 그렇다면 이 땅은 사바국토 - 석가모니 부처님의 국토다. 그런데 부처님은 보살 당시에 마음이 어떻게 부정하여 불토(佛土)가 이같이도 부정한가'하였다.
부처님은 이를 아셨다. 그리고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맹인이 말하기를 해가 어쩌면 이같이 어두울꼬! 한다면 이것이 누구의 허물이겠느냐'?사리불이 대답하였다.
'그것은 맹인이 스스로 보지 못할 뿐 해의 허물은 아닙니다.''사리불아, 중생이 허물이 있는 고로 여래(부처님)의 국토를 보지 못하느니라. 나의 국토는 청정하건만 네가 보지 못한다.' 하신다.
이 때에 대범천왕이 사리불에게 말하기를,'사리불이여 그런 생각하지 마시오. 어찌하여 이 불토가 엄정하지 못하다 하오. 내가 보기에는 이 사바국토가 자재천궁(自在天宮)과 같소이다. 당신의 마음이 평등하지 않으므로 이 국토를 부정하다고 보는 것이요. 부처님의 지혜에 의지하면 능히 이 불토의 청정함을 볼 것이외다.' 한다.
이 때에 부처님께서 발로 땅을 딛으시니 즉시에 온 천지가 상서로운 광명이 가득하고 대지는 칠보(七寶)로 장엄하여 그 아름답기는 무엇으로도 형언할 수가 없다. 마치 보장엄불(寶藏嚴佛)의 무량(無量) 공덕토(功德土)와 같다. 그리고 일체 대중이 또한 부처님과 똑같은 연화좌에 앉아있는 것이다.
일체 대중이 모두가 놀랐다. 이 때에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 불토(佛土)의 청정하고 장엄함을 보라!' 사리불이 감탄을 마지 않았다.
'세존이시어 일찍이 보지 못한 바이오며 듣지도 못한 바입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부처님의 엄정 국토를 알겠습니다.''사리불아, 나의 불국토는 항상 이와 같이 청정하니라. 만약 마음이 청정한 사람이면 언제나 이 땅의 공덕장엄을 보리라.'


10. 믿는 자만이 복을 받는다.
부처님은 이와 같이 서원을 세우시고 이와 같이 서원을 완성하셨고 이와 같이 국토는 청정 장엄하였고 이와 같이 일체 중생을 성숙(成熟)시키셨다.
이것은 염원(念願)이 아니요, 이상(理想)이 아니요, 미래에 이루어질 약속이 아니다. 지금 목전(目前)에 펼쳐진 현실이요, 사방에 현전(現前)한 현존(現存)이다.
믿음이 미치는(信得及)자는 성(聖)이요, 믿음이 미치지 못한(信不及)자는 범부(凡夫)라는 말이 있다. 말하자면 이 진리 현실을 믿는 자는 진리를 사는 영광을 누릴 것이요, 믿지 못하는 자는 답답한 고생 주머니를 찬 범부(凡夫)라는 말이다.
부처님께서는 불을 집어 들고 우리의 눈 앞에 들어 대시면서 '이것을 보라!' 하신다. 이 밝은 불을 보고 불을 안 사람은 상(上), 불을 보지는 못했어도 불의 밝음, 따스함, 시원스레 걸림없음을 믿고 행하는 자는 중(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깨쳐봐야 알지 나는 중생이야.' 하는 자는 이른바 믿음이 미치지 못하는 자 즉 아견(我見)의 산에 머리를 푹 파묻고 아무 것도 안 보인다고 허둥대는 자다.

11. 기뻐하자. 우리 모두는 진불자(眞佛子) 축복을 받은 자다.
법화회상에서 저 때에 부처님의 수기(授記)를 받은 사리불의 기쁨을 생각해 보자.
'이제 이미 일체 중생에게 여래 공덕은 만족하셨다.' 하시고 수기(授記)를 주셨을 때의 기쁨은 이것이 사리불만의 기쁨은 아닌 것이다. 바로 일체 중생의 기쁨이요, 믿음을 발한 모든 중생의 환희(歡喜)다.
생명 있는 자 그 모두의 기쁨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다.
저 때에 사리불 존자는 복받쳐 오르는 기쁨을 억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제가 옛적에 부처님을 따라 법(法)을 배우는 동안 많은 보살(菩薩)들이 수기를 받는 것을 보았아오나 저는 그에 참례하지 못하여 매양 부처님 지견(知見)을 잊은 것을 심히 한탄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부처님으로부터 일찍이 들은 바 없는 미증유(未曾有) 법문을 듣고 마음 속 모든 의심은 끊어졌아오며 신심(身心)이 태연하여 즐겁고 안온하옵기 이를 데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이제야 알았습니다. 저희가 바로 진불자(眞佛子)인 것을!' 하고 있다.
진불자(眞佛子)! 우리가 진불자, 진리왕국의 왕자다.
그래서 진불자는 감사와 환희 그리고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는 화안(和顔)으로 계행(戒行)을 삼고 진리의 바다에 깊이 들어 다함없는 창조(創造)와 보은행(報恩行)을 전개하여 환희와 행복을 누려야 할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