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의 인생살이가 고달프고 허무할수록, ‘에라! 차라리 절에나 갈까’ 하는 마음으로 위안을 하며 살아온 것이 대개의 입장이었습니다. 아마 셈을 해보지 않아서 그렇지 평생동안 절에 가서 머리 깎고 싶었던 적은 무척 많았을 것입니다. 사춘기 때, 인생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했던 시절을 빼고도 말입니다.

 ‘평생 소원이었던 절 생활, 노년이 되어도 쓸쓸하지 않고 즐거울 곳, 이제 뜻을 이루게 되었네! 함께 모여 살기만 해도 수행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곳, 지상의 도솔천 내원인 불자공동체 가 출현했다네!’

이 말은 도피안사의 수행공동체 수광원(불교식 실버타운이자 전원주택을 겸함)에 대한 기대를 나타낸 뭇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사실 말 그대로 수광원은 아늑한 도솔산 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옛 사람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이곳을 도솔동천(兜率洞天)이라고까지 불렀던 천혜의 길지(吉地)입니다.

수광원이 있는 이곳 도피안사는 종합수도장으로서, 직장인들은 마음수련으로 주말을 뜻깊게 지낼 수 있고, 노인들은 인생을 신심(信心)으로 머물 수 있으며, 아이들은 천체관측 및 자연학습장의 교육공간으로 머물 수 있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자아성찰과 인격성숙의 공간입니다. 또한 우리의 정서를 대변할 수 있는 전형적인 한국농촌의 풍경 속에 편안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 수광원에서 함께 살기만 해도 수행이 된다는 뜻은 마치 가늘고 긴 삼(麻)이 빽빽하게 모인 힘으로 태풍을 이기는 것과 같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배움을 주고받아 의지처로 삼기 때문이지요. 잘한 일이든 잘못한 일이든 인간은 오직 이러한 인간 속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평생 염불 한 번 제대로 못했어도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부처님 말씀을 듣다가 보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불심은 저절로 깊어져 있습니다. 이것이 함께 사는 대중의 힘입니다. 그래서 대중은 스승이고 담장이나 울타리와 같습니다. 이처럼 대중의 힘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힘을 각자에게 주고 있습니다. 좀 더 비유하여 말씀드리자면 큰돈은 남이 벌어주는 것과 같고, 큰 도인도 사람 속에서 출현한다는 말이지요.

그러므로「파라미타수광원」은 그 흔한 양로원이나 실버타운이 아니라, 조촐하고 마음 편한 절〔入山修道〕생활입니다. 비록 정년의 나이가 되어 늦게 출가(절에 사니까)한 사람들이라 해도 편하게 도닦으면서 사는 곳이라고 보면 됩니다. 단지 함께 사는 몇 가지 단순한 공동의 규약만 잘 지키고 따르면 아무런 불편이 없습니다. 그래도 영 미심쩍으면 사전에 직접 와서 주변을 둘러보고 담당자들과 이야기해서 자신을 가늠해 본 뒤, 스스로 선택해서 수행공동체생활에 적응하면 됩니다.

이처럼 자신이 수광원에 살게되면 가족이나 친지, 이웃들의 불연(佛緣)도 깊어집니다. 또한 본인은 수행해서 좋고 가족들은 불심 키워서 좋고, 자식들은 부모님을 잘 모셔서 떳떳하고, 주변의 친지와 이웃에게는 인생의 모범이 되고, 우리의 서울은 한층 쾌적해지고….

우리가 어느 날, 혼자 조용히 앉아 생각해보노라면 인생이란 참으로 소중하다는 생각이 가슴 깊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실지로 그렇습니다. 특별한 누구에게만 어쩌다가 그런 생각이 간혹 찾아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인생의 밑바탕이며 진실입니다. 그러므로 각자의 인생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소중합니다. 느끼는 사실 그대로입니다. 이런 생각은 비단 누구만의 특별한 생각이 아니고 모두가 느끼는 것이고 깨닫는 생명의 하소연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생명체들이 모두 고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서 그 어디에도 비교될 수 없고 그 무엇과도 교환될 수 없는 신성불가침입니다.

사실 인간의 존재가 지극히 존귀하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성현들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우리들 각자가 인생을 직접 살아봄으로서 더욱 실감나게 깨닫는 일입니다. 이처럼 존엄한 인간신성은 갓 수태한 어머니 뱃속의 생명에서부터 죽음에 이르는 백세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하등의 차이도 없습니다. 인간각자가 지닌 원만 무결한 덕성, 그 덕성을 존재론적으로 파악하고 작용시켰을 때, 우리는 그것을 불성(佛性)의 노현(露現)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성품이 고스란히 우리들 자신에게 내재해 있다는 이 놀라운 사실은 전적으로 부처님의 대각이라는 사건을 통해서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이러한 인간신성의 극존을 깊이 믿고 발휘하고 빛나게 함은 지고의 인간가치를 실현한다고 하는 인류공동의 과업이고 또한 미덕입니다. 우리 불자들의 삶이 진리를 바탕으로 한 실천행이 되어야 한다면 어찌 이 놀라운 인간신성 밖에서 따로 진리를 구하거나 찾겠습니까?

불자는 바로 현재이곳, 지금 이 순간부터 금생의 육신과 해어지는 그 순간까지 본래의 덕성을 마음껏 발휘하여 항상 그 빛을 이 인간사회에 찬연히 뿌려야 할 것입니다. 특히 어두운 곳과 그늘이 드리워진 곳에서는 자그마한 빛도 크게 쓰이는 곳이므로 더욱 분발해야 할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일입니다. 이에 가정적, 사회적 소임을 마친 분들이나 또는 일찍부터 수행정진에 뜻을 세운 분들을 위해 더욱 알찬 자아실현의 수행을 통해 오로지 자신의 덕성을 함양하고 발휘하기 위해 불자수행공동체인「파라미타수광원」을 건립하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본 수광원은 멀리는 대승불교의 흥기로부터이고 청구의 인연으로는 고려시대 사원에서 빈번했던 결사(특히 백련결사)에 원형을 두고 있는 까닭에 철저한 불교사상의 실천수행위주의 전통을 계승합니다. 그러므로 수광원은 인류구원이라는 부처님의 부촉을 받들어 실천하기 위한 횃불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자담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수광원 구성원은 반야바라밀다결사의 구심체인 동시에 그 일원입니다. 이들은 구국구세의 원과 행을 가슴에 담고 초연히 독보하는 기상과 물러서지 않는 용맹으로 일상(日常)을 이루고 나아가 인간세상을 향해 전진해가야 합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무상지(無上智)와 인생을 살면서 체득한 경험을 되살려 각자의 가슴에 평화를 가꾸고 기쁨을 심어 세계평화에 적극 기여하고 앞장서야 하는 자발적인 불자이며, 여래께서 친히 부촉하신 영광스러운 전법자들입니다. 불자는 이와 같이 조국과 세계를 커다란 하나의 생명체로 파악합니다. 그래서 내 생명, 조국생명, 국토생명을 하나의 꽃송이로 보고 그 속에서 솟아 퍼지는 향기를 인간애, 인류애, 또는 애향심, 애국심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인간은 젊은 시절, 가슴의 뜨거운 충정으로 나보다 이웃과 사회, 직장과 조국을 먼저 사랑하였습니다. 비록 노년이 되어서도 거기서 차곡차곡 축적된 지혜로 구국구세의 빛이 되어야하며 길잡이가 되어야합니다. 이러한 자각적인 삶의 대열은 빛을 뿌리는 광명대열이며 행복과 평화의 니르바나 행진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죽음마저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정년이란 매우 합리적인 제도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성년이 될 때까지 배우고 익혀서 가정과 사회에 봉사한 뒤에는 마땅히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고 정리해야할 기회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정년입니다. 결코 정년은 늙었기에 이제 그만 물러가라는 퇴출상한선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을 챙길 수 있는 아주 고마운 제도이며, 자신의 부족을 보충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바로 이러한 때, 수광원에 입방하여 자신을 가다듬고 자신의 내면을 더욱 충실히 합니다. 사람이 늙어 자식 곁에 머뭇거리며 짐이 되지 않고, 오히려 도회지를 떠나 초연히 산 속에 산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 아닙니까?

그래서 예로부터 불가에서는 함께 모여 수행하는 곳을 삼밭에 비유하여 총림(叢林)이라 하였고 또한 수행자들의 모임을 회중(會衆)이라 했습니다. 왜냐하면 함께 벗하는 도반은 수행공동체, 즉 한 몸이기 때문이지요. 어느 때나 흔들리지 않고 물러서지 않는 불퇴전의 지위〔마음〕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벗이기에 말입니다.

바야흐르「파라미타수광원」이 한국불교의 목전에 그 모습을 드러내어 모든 불자들의 수행의 힘과 경륜의 힘이 두루 합하여 구국구세의 터전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