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광대무변한 우주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에너지 창고입니다. 이 에너지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존재하며, 뭐라고 따로 이름 부칠 수는 없지만 불성(佛性)이나 법성(法性)을 근본으로 하는 이 에너지는 연기(緣起)의 법칙을 따라 생성소멸을 반복합니다. 그러므로 이 거대한 에너지 창고인 우주에서 생겨난 만물들은 크기나 모양, 시간이나 공간을 떠나 모두가 제각기 하나의 소우주입니다. 다만 인연 따라 태양이나 지구 등 천체가 생겼고, 내지 사람이나 초목 군생(群生)까지도 생겨났으며, 또 마침내 언젠가는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부서져 가루가 되고 가스가 된 이들을 토대로 새로운 생명의 싹이 돋아나 성주괴공(成住壞空)과 생주이멸(生住異滅)의 순환이 계속될 것입니다.

2. 만유의 근본은 법성이다

말하자면 근원에 의지해서 모든 생성소멸이 연기의 법칙에 따라 반복될 뿐이지, 그것들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비록 현상의 모양과 이름, 시간과 공간은 달라도 근본의 법성은 같은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철저히 아는 것을 불교에서는 깨닫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천문대건립 과업의 당위성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일찍부터 이 같은 하늘에 관심을 가지고 천문대를 세워서 천체를 관측해 왔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서양보다 우주법계를 더 깊이 다루는 불교에서는 하늘에 대한 구체적인 천체관측을 하면서 연구한 바가 역사적으로 거의 없습니다. 그 까닭은 아마도 정량적(定量的)인 서구의 합리적 사상보다 정성적(定性的)인 동양 고유의 전일적(全一的) 사상에 기인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즉 부분보다 전체를 관조하고자 하는 동양의 전통적 사유방법에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3. 불법은 우주의 원리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우주를 탐구하는 최첨단 과학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당연히 불자들도 이 시대의 주인공으로서 인류 공동의 평화번영에 적극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불교 경전에만 의존해온 추상적인 사유의 우주관을 벗어나, 이제부터는 천체관측의 구체적인 체험과 이해를 통해, 우주 구성체들을 직접 만나는 기회를 가져서 실질적인 사고를 먼저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주법계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며 전일적(全一的)인 사상을 인식함과 동시에, 심오한 불법의 세계를 전 우주적으로 확장해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방법만이 오늘날 물질문명에 짓눌려 있는 우리들 정신세계를 회복하는 최우선의 길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일찍이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상주법계(常住法界)나 시방삼세(十方三世),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와 수미산(須彌山)의 존재,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고 표현했던 허공의 크기 등, 실로 광대무변한 불교 우주관을 21세기 첨단과학인 천문학을 통해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불교천문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데 많은 분들이 의견을 같이 하여 뜻을 모았습니다.

4. 세계평화와 번영의 원리

현대인의 과학적인 상식으로 천문학을 ‘우주만유의 생성소멸과 변천과정을 밝히는 학문’이라고 단순하게 말합니다만, 우리 불자들에게는 천문학을 통해서 바라보는 우주천체계가 곧 불교의 연기적 법계이며, 깨달음의 세계로 깊이 인식됩니다. 왜냐하면 집착심을 떠나면, 우주 그 자체가 바로 불법의 세계이며, 또한 불법의 진리로 이루어진 진정한 삶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부처님께서는 새벽하늘 밝은 별을 보고 깨쳤고, 철학자 칸트는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에서 인간도덕률의 근본을 찾아야 한다고 ‘실천이성 비판’에서 역설했습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동안 천문학에 대한 현대적인 연구나 관측에 대한 관심을 전혀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불교의 우주적인 원융무애한 사고는 세계평화의 원리로 실제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 채 닫혀 있게 되었고, 우리 인류가 진리동일생명으로서 한 몸, 같은 몸임에도 불구하고 천 갈래 만 갈래로 쪼개져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대립투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애석하고 통탄할 일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5. 불교천문대 건립은 구국구세

이에 저희들은 우리불교의 위상에 따르는 시대적 요청과 그 사명을 자각하고, 인류가 이룩한 과학발전을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불교의 평화원리를 보다 더 깊이 이해하고 전파하기 위해 안성 도피안사에 <도솔산천문대>를 건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하여 전 불자, 전 국민과 인류를 대상으로 불교의 우주관을 바르게 알리고, 나아가서 거기에 맞는 인생관과 세계관을 확립하여 인류 공동체의 터전인 지구생태계 사랑에 앞장설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려고 합니다. 동시에 말기적 증상을 드러내고 있는 현대의 물질문명에도 분명 새로운 활로를 제시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도피안사의 <도솔산천문대> 건립은 개산조(開山祖), 금하당 광덕대선사(金河堂光德大禪師)께서 주창한 전법지상(傳法至上)의 숭고한 뜻을 실천하는 구국구세(救國救世)의 구체적인 작업이기도 합니다.

6. 세기적인 대작불사

오직 사람의 마음을 밝히고 키우지 않으면 인류평화와 지구생태계의 보존 등,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절박한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전국의 불자형제 여러분, 그리고 국민여러분!
시작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한국에 불교가 전해진 이래, 처음 이루어지는 이 세기적인 대작불사(大作佛事)에, 전 불자들과 국민 모두가 뜨거운 신심과 장한 원력으로 흔쾌히 동참하여 <도솔산천문대>를 건립하는 대역사를 성취합시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계승하는 대각 구국구세(大覺 救國救世)를 이루는 불법의 상속자가 됩시다. 또한 조상님의 지혜를 계승하는 겨레의 자랑스러운 후예가 됩시다. 각행원만(覺行圓滿)한 한국불자들의 참 면모를 드러내는 진실불자가 됩시다. 감사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다. 나무석가모니불.

불기 2548(2004)년 1월 11일
〈도솔산천문대〉건립위원회 일동